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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언급, 중용은 자사작이다.

이제 대강 독자들은 중용이라는 텍스트를 접근해 들어가는 시각의 대강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제 텍스트 그 자체의 비평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 본문으로 진입하는 수고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중용은 누가 언제 쓴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참으로 쉽고도 어렵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서라는 책, 그 편집체계는 이정을 거쳐 주희에게서 집대성된 것인데, 그중에서 중용은 유일하게 한 사람에 의한 단일저작으로 예부터 인지되어 왔다. 논어는 기본적으로 공자의 말을 모은 책이라고 하지만, 공자 이외의 제자들의 말이나, 제자들끼리의 말, 그리고 공자의 언행록과 무관한 기사도 들어가 있는 잡다한 성격의 것으로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편집되면서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맹자도 사마천 사기의 맹자순경열전에 의하면, 맹가..

카테고리 없음 2025.06.22

주희의 중용장구서

중용은 과연 누가 무엇을 위해 지은 것일까? 그 간결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자사자께서 도학이 그 전승을 잃을까 걱정하시어 중용을 지으신 것이다. 참으로 대가다운 일문이라 할지 않을 수 없다. "중용, 하위이작야"라는 한마디 속에 중용의 단생에 관한 모든 것을 묻고 있고, 또 그 모든 것을 곧 답변해 버린다. 이 첫마디의 무게감은 전체를 관망하여 장악한 대가가 아니면 꺼내기 어려운 언표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선 "중용장구"라는 말부터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희가 신유학운동의 기치로서 "사서"를 표방한 것은 대중이 모두 아는 바이다. 그중 논어와 맹자는 이미 알려져 있었던 문헌으로 주희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객관적 전승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두 책에 대해서는 지나간 혹은 당대학인들의 주..

카테고리 없음 2025.06.19

식색의 본능

나 사람이든, 내 서재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든, 모든 유기체는 식과 색을 떠날 수 없다. 식은 생존을 위함이요, 색은 재생을 위함이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는 오히려 식 색이란 과/불급이 거의 없다. 나는 요즈음 집에서 닭을 키우고 있다. 닭은 확실히 식성이 좋지만, 아무리 진수성찬을 베풀어도 필요한 양식 이외의 분량을 취하는 법이 없이 다. 과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색도 종족번식을 위한 생식 이외의 정의 낭비는 거의 없다. 연어도 그 기나긴 수년간의 생애의 여정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단 한 번 사정을 하고 죽는다. 인간처럼 매일 정액을 나비하는 동물은 자연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약육강식"이 니 "정글의 법칙"이니 하는 따위의 개년도 가치론적으로 완벽하게 왜곡된 언어일 뿐이다. 정글의 상계에서도 ..

카테고리 없음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