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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색의 본능

나 사람이든, 내 서재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든, 모든 유기체는 식과 색을 떠날 수 없다. 식은 생존을 위함이요, 색은 재생을 위함이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는 오히려 식 색이란 과/불급이 거의 없다. 나는 요즈음 집에서 닭을 키우고 있다. 닭은 확실히 식성이 좋지만, 아무리 진수성찬을 베풀어도 필요한 양식 이외의 분량을 취하는 법이 없이 다. 과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색도 종족번식을 위한 생식 이외의 정의 낭비는 거의 없다. 연어도 그 기나긴 수년간의 생애의 여정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단 한 번 사정을 하고 죽는다. 인간처럼 매일 정액을 나비하는 동물은 자연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약육강식"이 니 "정글의 법칙"이니 하는 따위의 개년도 가치론적으로 완벽하게 왜곡된 언어일 뿐이다. 정글의 상계에서도 ..

카테고리 없음 2025.06.15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과연 이것은 무슨 말인가? 이것을 우리말로 풀면 이와 같다. "천이 명하는 것, 그것을 일컬어 성"이라 한다. 사실 가장 정직한 해석이란 이 풀이 이외로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여기서 성을 놓고, 본체니 본성이니 리니하는 따위이 외재적 규정성을 가지고 접근해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 사기일까. 일차적으로 성에 대해서 규정하는 문장을 앞에 놓고, 대뜸 그 본래의 규정성 이외의 개념을 가지고 거기에 덮어씌운다는 것은, 차돌을 앞에 놓고 금이라 우겨대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성은 무엇인가, 이 문장이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천이 명하는 것이다. 성은 천이 명하는 것이라고 하는 그 자체의 규정성을 떠나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아니 된다. 이 문장은 본시 "성, 천명야"라 해도..

카테고리 없음 2025.06.13

천명이 명하는 것 그것을 일컬어 성이라한다.

실제 중용을 주석한다는 것은 공포스럽다. 평생을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보았으나, 이 말처럼 온축되어 심오한 말이 없고, 세상의 지혜의 문학으로 말한다 해도, 이것처럼 정직하고 영원한 인간의 상황을 다 함축한 언어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석에 들어가기 전에 몇날 며칠을 이 첫 구절을 놓고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을 하고 또 해보았으나 내 머리에 떠오르는 묘안은 없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한대의 정현주, 그리고 당대의 공영달소, 그리고 석돈 중용집해에 실린 송선하의 제설, 그리고 주희의 장구, 어록, 혹문의 장황한 해석이래 명과 청대를 거쳐 오늘날의 동아시아 구미 석학들의 다양한 논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한우충동하는 주석이 첩첩이 쌓여있으나, 그것을 다 일별 하여 보..

카테고리 없음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