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은 과연 누가 무엇을 위해 지은 것일까? 그 간결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자사자께서 도학이 그 전승을 잃을까 걱정하시어 중용을 지으신 것이다.
참으로 대가다운 일문이라 할지 않을 수 없다. "중용, 하위이작야"라는 한마디 속에 중용의 단생에 관한 모든 것을 묻고 있고, 또 그 모든 것을 곧 답변해 버린다. 이 첫마디의 무게감은 전체를 관망하여 장악한 대가가 아니면 꺼내기 어려운 언표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선 "중용장구"라는 말부터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희가 신유학운동의 기치로서 "사서"를 표방한 것은 대중이 모두 아는 바이다. 그중 논어와 맹자는 이미 알려져 있었던 문헌으로 주희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객관적 전승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두 책에 대해서는 지나간 혹은 당대학인들의 주석을 모은다는 의미에서 집주라 한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주희 자신의 독창적 사상의 발현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대학과 중용은 일반인들이 숙지하고 있지 않았던 서물로서 예기의 두 편으로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발굴해 낼 때, 주희 자신의 정리를 필요로 했다. 즉 논어와 맹자는 주자가 장구를 나눌 필요가 없이 이미 정리되어 있었지만, 대학, 중용은 자신의 텍스트감각에 따라 새롭게 분장분구해야 되는 문제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장구체계를 만든 후에 거기에다가는 기존의 학자들의 주를 모을 일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쏟아부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문헌은 유학의 대강과 그 규모를 파악케 하는 힘이 있는 위대한 문학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문제에 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또 그 장구의 체계에 여러 문제가 있어서 그 파편들을 이동시켜야 했고, 또 보전을 첨가해야 했던 것이다. 하여튼 주희는 대학의 장구주해에 엄청난 정력을 쏟았으나 그렇게 성공적인 결실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용은 저자가 확실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었으며, 또 파편들을 이동시킬 필요가 없이 온전한 체계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희 본인이 사서독서법에 있어서도 중용은 최후에 읽어야 할 가장 미묘한 책으로 간주했다. 그 내용이 즉 하학의 세계보다는 상달의 세계를 섭렵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희의 중용 장구주해는 그의 사상투쟁의 결승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사서의 주희서문들을 모두 비교해 보면 중용장구서만큼 그의 사상의 핵심을 쏟아놓은 농도 짙은 언설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중용장구서는 중용에 대한 해설이라기보다는 그 나름대로 신유학의 매니페스트라는 불러야 할 만큼 주희철학을 대변하는 중후한 명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중용은 누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지었는가? "하위"의 "위"는 우리말로 "때문에"도 되고, "위하여"도 된다. 주희는 명료히 말한다. 중용의 저자는 "자사자"이다. 끝의 "자"는 주희가 공자의 손자인 자사를 높여 부른 말로써 "선생님"에 해당된다. 이름은 공자의 직전제자들이 얻는 이름의 형식을 취한 것이니, 그가 비록 손자였지만, 공문의 직전제자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로"와 같이 앞에 "자"가 붙은 것인데, "사"가 주어진 것을 보면, 자사는 매우 사변적이고 사색적이고 사상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자사자"의 앞뒤의 "자"자를 이와 같이 명료하게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자사자는 도대체 중용을 왜 지었는가? 도학의 실기전을 우려하여~ "도학"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자사시대의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주희 당대의 개념임이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이정 이래 새롭게 등장하 배타적인 성격을 갖는 철학체계를 "도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세상의 도의를 진작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통유학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최소의 용례는 논의 양지편에서 나오고 있는데, 후대의 용법의 함의를 충분히 담고 있는 말로써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여기 가장 중요한 것은 "실기 전"의 '전'이라는 말이다. 여기 "전"이라는 것은 당음 문장에 나오는 "도통"의 "전"이라는 말이다. 이미 도학이 정통이라는 배타적 개념을 수반하고 있고 그 전승이 잃어버려질 것을 우려하여 중용을 지었다고는 것이다. 즉 중용의 탄생 그 자체가 한 사상가의 단순한 창조적 생각의 발로가 아니라 도통이 상실될 뜻한 위기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할아버지 공자의 사상의 전통이 다양한 사조들의 도전에 의하여 사라질 사라질 듯 한 위기감을 느낀 자사가 그 적통을 지키기 위하여 즉 그 사상들의 도전을 수용하면서 이 위해단 중용을 지었다는 것이다.
다음 절부터 그 공자의 사상은 상고의 전통에 뿌리박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 "우려"라는 말은 유학의 근본정신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대인의 우려이며, "우려"라는 말은 유학의 근본정신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대인의 우려이며, 세상의 도덕적 질서를 지키려는 사상가들의 각고의 노력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키엘케고르나 하이데가 의 "앙그스튼"나 "조르게"가 의미하는 바 막연한 존재의 불안이 아닌 보다 사회적, 역사적 대이를 우려하는 대인의 근심이다. 여기에는 원죄의식이나 죽음의 그림자가 없다.
대저 상고의 성신께서 하늘을 이어 극을 세우시고 이래로 도통의 전승이 스스로 유래가 있게 되었다. 그 경전에 보이는 것으로 이야기할 것 같은면 "진실로 그중을 잡아라"는 요임금께서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에 해주신 말씀이다. 그리고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생각하고 한결같이 행동하여, 진실로 그 중을 잡을지어다."는 또한 순임금께서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에 해주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