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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지성(天下至誠)

글공작소주인 2025. 7. 5. 10:17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은 치고의 문제이다. 그것은 소소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극하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소소한 사물마다 모두 성이 있게 된다. 성이 있게 되면 그 사물의 내면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되면 그것은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드러나게 되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움직인다. 움직이면 변한다. 변하면 화한다. 오직 천하의 지성이래야 능히 화할 수 있다.]

 

이 단의 논의도 관계된 고전의 출전을 인용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자사 이후에 형성된 논의들이다. 따라서 자사의 언어는 자사 나름대로의 문맥 속에서 소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기차라는 말이 문제 되는데 주희는 앞서 말한 대로 논의를 모두 천도와 인도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이해했기 때문에 본장은 인도 ㅏ테고리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되면 기차는 성인의 단계가 아닌 그다음 단계의 현인 이하의 모든 범용 한 사람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앞뒤 문객을 살펴보면 논의도 천하지성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천하지성으로 끝나고 있다. 따라서 이 양자의 내용은 단계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내용을 다른 시각에서 본 관점의 이동일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천하지성이 자기의 성에서 타인의 성으로, 도 물의 성으로, 그리고 천지지화육에로의 참여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하였고, 소소한 사물의 개체적 사태로부터 그 내면의 덕성이 천하지성의 화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 것이다. 정현은 기차를 주해하여 "자명성"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고 했는데 퍽 적확한 지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차"는 "논의를 바꾸어 말하자면"이라든가, "그다음으로 논의해야 할 것은"이라는 정도의, 그냥 논의의 단계에 관한 언급일 뿐이다. 인간의 경지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치곡"의 "곡"을 우이는 "폐"로보고 차곡이란 그 폐를 해소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장자와 순자의 논의를 가지고 역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주희도 "곡"을 "일편"이라고 규정했다. 한 구석으로 치우친 것이라는 뜻인데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장자의 천하 편에 "일곡지사"들의 도술이 천하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고, 순자의 해폐편에도 그 첫머리에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근심거리는 일곡의 편견이나 아집에 가려 큰 이치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말이 있다. 

 

그러나 여기 "치곡"의 "곡"은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의 치우친 "일곡"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곡"이란 사물의 구석구석, 마디마디, 그러니까 소소한 사태를 총칭하는 말일 수 있다. 우리가 "곡진"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에서 쓴다. 정현은 이에 다음과 같이 주를 달았다. "치는 이른다는 뜻이다. 곡은 소소한 일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정현의 주를 따라서 "치곡"을 "사물의 소소한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정성으로 이른다."라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였다. "곡능유ㅠ성"도 주희처럼 "곡하면 능히 성이 있고"라고 해석하지 않고, "곡마다 잘 성이 있게 한다"라고 해석하였다.

 

"형"은 보통 "형체를 갖춘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드러난다"의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나타난다"의 뜻이 있는 "저"의 전 단계의 "형"으로 쓰인 것이므로 보다 내면적인 응축이나 내면적인 덕성이나 법리의 형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장자의 전치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태초에 무가 있어다. 이 혼돈의 무에서 형체도 없는 일이 생겨났다. 이 일이 멈추었다. 움직였다. 하면서 물을 생성한다. 그 물이 이루어지면서 리를 생하게 되는데 그것을 형이라 일컫는다." 여기서 "형"은 리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이런 맥락에 따라 자사의 본문을 해석하였다.

 

마지막의 "화"는 이미 맹자의 "선-신-미-대-성-신"의 6단계 논의에서 성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이화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화"라는 것은 근원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변"의 단계를 근원적으로 초극하는 것이다. 변이란 동하면 변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변은 화에는 이르지 못한다. "변"은 물리적 변화, "화"는 화학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사의 시대에 물리와 화학의 엄격한 구분이 있었을 리는 없지만, 변은 동일 아이덴티티 속에서의 변화이고 화는 아이덴티티의 근원적인 변화 즉, 알이 병아리로 변하는 것과도 같은 변화라는 생각이 선진사상가들에게도 공유되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고, 그 설에 "화라는 것은 개구리가 메추라기가 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해설되었다. 순자 정명, 회남자 제속훈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다.

 

우리가 비만이 상태에서 몸무게를 뺀다고 하자, 그런데 100kg에서 95kg으로 몸무게를 줄이는 것은 "변"의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으로는 화를 달성하지 못한다. 100kg에서 60kg의 사람으로 건강하게 변하려면 그 인간의 모든 습성과 관념과 가치관의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 변화가 "화"이다.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건강한 60kg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100kg에서 80kg으로 변했다 한들, 조금만 게을러지면 다시 110kg으로 증가되는 것은 다반사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 변화는 "변"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는 오로지 천하의 지성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문명"과 "문화"에 관해서도 동일한 말을 할 수 있다. 문화는 문명의 "화"의 계기이다. 나는 근세 서양인들처럼 문명을 물질적 문명으로 보고, 문화를 정신적 문명으로 보는 그러한 유치한 심신이원론적 규정을 내리지 않는다. "문명"이란 단지 미개한 어둠에 대한 "밝음"의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밝음의 코스모스를 지켜가는 것은 "화"의 계기들이다. 문명이 근원적인 "화"를 달성치 못하면 반드시 쇠락한다. 문명의 화 즉 문화는 오직 천하의 지성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화"를 성인의 주체로 삼아 이야기해도 그것은 자동사도 되고, 타동사도 된다. 성인은 천하의 사람들을 근원적으로 "화" 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문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이것은 보통 성인의 "감화"라는 말로 나타낸다. 그러나 성인은 타인만을 감화시킬 수 있는 절대불변의 고정적 실체가 아니다. 타인을 감화시키려면 우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감화시켜야 한다. "화"라는 동사는 영원히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나는 "오직 천하의 지성이라야 능히 화할 수 있다"라고 애매하게 번역한 것이다. 자동사와 타동사의 양면을 포섭하는 것이다. 순자의 불구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군자가 다음을 기르는 것은 성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성을 극진하게 한다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을 굳게 지키고, 의를 용감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성하게 하여 인을 지키면 그 내면에 덕성이 형체를 갖추며 응축된다. 덕성이 응축되면 신묘하게 되고, 신묘하게 되면 능히 화할 수 있게 된다. 그 마음을 성하게 하여 의를 실천하면 이치가 서게 되고, 이치가 서게 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능히 변할 수 있게 된다. 변과 화가 번갈아 일어나는 것, 이것을 일컬어 천덕이라 한다"

 

순자는 "성"을 수인과 행이 양 측면으로 나누고 수인의 결론을 화로, 행의  결론을 변으로 보았다. 그리고 변과 화가 번갈아 일어나는 과정을 천덕으로 본 것이다. 여기 동원되고 있는 언어는 자사의 언어와 매우 비슷하다. 순자는 자사의 언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전체를 오직 군자의 양심의 문제로 보았다는 데, 순자의 사유는 자사의 우주론적 사유의 웅혼함에 영 못 미치는 것이다.

 

"기차"라는 것은 대현이하 무릇 성의 지극함에 이르지 못한 자들을 통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치"라는 것은 무엇을 그 극치에까지 밀어 도달케 하는 것이다. "곡"이란 한 편으로 치우친 것이다. "형"이라는 것은 내면에 쌓인 것이 겉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저"는 드러나는 것이 한층 더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명"이란 광채가 빛나 그것이 밝게 퍼져 나가는 성대함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동"이란 성이 그렇게 명의 다물이 움직이는 데 따라 변하는 것이다. "화"라는 것은 변화의 정도가 도무지 그 소이연을 다 ㅎ파악할 수 없는 요소를 내포하는 것이다. 대저 사람의 성은 같지 않음이 없으나 기애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오직 성인만이 그 성의 전체를 들어 온전하게 다 발현시킬 수 있다. 그다음의 현인 이하의 사람들은 반드시 그 선단이 발현된 치우친 한 구석으로부터 그것을 단계적으로 밀고 나아감으로써 그 지극한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치우친 구석구석마다 도달치 아니 함이 없으면 그 덕이 리얼하지 아니 함이 없다. 그리하면 나타나고, 드러나고, 움직이고, 변하고 하는 공능이 스스로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변의 과정이 쌓이면 반드시 "화"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면 그 지극한 성의 묘용이 또한 성인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