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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천하국가란

글공작소주인 2025. 7. 13. 21:31

[공자가 말씀하시었다. 천하국가란 평등하게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높은 벼슬이나 후한 봉록도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슬퍼런 칼날조차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능하기 어렵다.]

 

공영달은 소에서 주희가 한절로 묶어 이것이 다 안회가 능히 중용을 행할 수 있음을 밝히어 중용의 어려움을 피력한 것이라 하였는데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장은 앞 장과는 독립된 것으로 오히려 다음 장의 "강함"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리고 주희는 "천하국가 가균"을 "지"의 덕성으로, "작록가사"를 "인"의 덕성으로, "백인가도"를 "용"의 덕성으로 간주하였는데, 그럴듯한 설이 기는 하나, 꼭 그러한 개념적 틀에 맞추어 구성된 문장이라 보기는 힘들다.

 

나는 어려서부터 "중용"을 읽으면서 이 내용을 몹시 사랑하였다. 무엇인가 나의 어린 감성에 호소하는 절절한 천명이 여기 숨어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매력은 분석적인 개념들의 결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낄 때 스미는 전체적인 파워에 있다. 가균 -> 가사 -> 가도의 배열은 지난함의 크레셴도를 나타내고 있다. 시퍼런 칼날 위에 선 무녀나 전쟁터의 장군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구절은 무엇인가 감매키 어려운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말해준다. 국가에서 작록에서 백인으로 진행되는 개념들은 그 개념이 지시하는 외연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막상 실존적 느낌이나 부담감은 한없이 날카롭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천애의 절벽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중용"이 등장한다. 그리고 앞의 세 "가"와 중용의 "불가"가 대비된다. 나는 중용의 불가능성을 문자 그대로 직여하면 너무 실천가능성을 봉쇄해 버리므로 "능하기 어렵다"라는 마일드하게 번역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만신 김금화 여사에게서 젊은 날 그의 신내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가 내림굿을 받던 날, 신엄마인 외할머니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열일곱 살의 금화의 손을 잡고 이와 같이 말슴하시었다고 한다. "만신이 된다는 것은 뭇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곳통을 숱하게 참아내야 하느니라" 금화는 열일곱 살 때까지 한 오 년 동안 각혈을 하면서 심하게 앓았다. 그녀에게 신이 내리던 날, 정월 대보름달 밑에 하늘을 쳐다보니 갑자기 하늘에서 우루룽쾅쾅하는 거대한 소리가 나더니만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더란다. 그리고 맨발 벗고 논두렁을 미친 듯이, 떨어지는 별을 피해 뛰어갔는데 살얼음이 얼어붙은 개울로 첨벙 떨어지고 말았다.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싸늘하게 불고 개울물은 한없이 첨벙 떨어지고 말았다.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싸늘하게 불고 개울물은 한없이 차가웠지만 개울 위에 떠있는 몸이 다리가 등뒤로 굽어 머리에 붙었는데 꼭 보름달처럼 둥근 모습이었다고 했다. "외기러가자! 불리러 가자!"(밖으로 나가자, 바람에 불리듯 떠돌아다니자) 금화는 이렇게 외쳤다. 그 뒤로 작두를 탔다. 내가 작두 위에서 버히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신내림이 강하지 않을 때는 발바닥이 질척 질척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춤을 계속 추는 것이다. 여린 처녀의 몸매와 그 끔찍한 버힘의 느낌이 인간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여튼 본 장은 정치적 수완의 발휘나 세속적 명예의 거부나 신체적 용기의 과시보다 중용의 온전한 실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웅변하고 있다. 공영달의 소에 "천하"는 전자의 다스림의 대상이고, "극"은 제후의 다스림의 대상이고, "가"는 경대부의 다스림의 대상이라고 했다.

 

"가균야"의 "균"은 본시 땅을 고르게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글자이다. 다스림의 혜택이 백성에게 골고루 미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논어"에 공자의 말로써 "불환과이환불균"이라는 말이 수록되어 있는데 유가에는 분명하게 평등의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롤즈의 "원초적 입장"이나, 모두에게 직무나 직위가 열려있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하에서만 사회, 경제적 불편등을 제한고, 또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이 가장 높은 쪽으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평등제한원칙"은 모두 유가적 "균"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 사회의 불평등을 쇠소화하고 사회협동을 극대화하지는 롤즈의 정의 이론은 피상적인 공동체주의에 이하여 함부로 비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동체주의가 롤즈의 정의이론을 보완할 수는 있으되 본질적인 안티테제는 되기 어렵다.

 

"균"이라는 것은 고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처음에 제시한 세 명제는 각기 지, 인, 용의 사건에 해당되며, 천하의 지난한 일임에는 들림이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삼자는 모드 한편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자질이 지, 인, 용에 가깝고 또 힘써 노력하는 자라면 모두 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중용에 이르러서는 쉽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의가 정밀하고 인이 몸에 익어 한 터럭이라도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면 중용에는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의 삼자는 어려울 듯하지만 쉽고, 중용은 쉬울 듯하지만 어려운 것이니, 이래서 사람들 중에 중용에 능한 이가 적은 것이다.

 

"백인가도야"라는 표현 속에 용의 테마가 들어있고, 다음의 강, 증 용의 테마를 다루고 있으므로 그 양자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순의 대지로부터, 안회의 인을 거쳐, 자로의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므로 지, 인, 용의 테마를 연결해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