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의 곤지면행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 진대 능하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물을 진대 알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할진대 결말을 얻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분변 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별할진대 분명하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대 독실하지 못하거든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십시오.]
어려서부터 나의 가슴에 새겨진 중용의 명언이요, 나의 성격과 학문 자세를 결정한 좌우명이란 할 수 있다. "곤지면행"을 다시 한번 강조하신 말씀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멘트가 역시 보통사람의 일상생활 원칙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데 역시 중용의 일상서의 주제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중용은 현학적 도그마에 빠지지 않는다는 데 그 위대함이 있다.
"유불학, 학지불능불조야"의 해석은 주자의 입장을 따랐다. 공영달은 다른 식으로 읽었다. "유불학, 학지불능불조야"(배우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배우고, 능하지 못하면 놓지 말라) 좀 매가리가 없는 해석이다. 공영달해석을 따르는 자들은 "배우지 않음이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을 굳이 꺼낼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시비는 가리기 어려우나 주희의 해석방식이 훨씬 더 원문의 힘을 드러내주는 좋은 해석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최근 말콤 그래드웰이 슨 "아웃라이어"라는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공적 천재들이 선천적인 재능 때문이 아니라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실로 그 천재성을 이룬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매우 섬세한 분석을 해 놓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1만 시간만 지붕적으로 투자하면 아웃라이어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2006년 나온, 전재를 연구한 논문들을 집대성한 케임브리지 편람은 "천재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과학자들은 천재가 1% 영감, 70% 의 땀,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으로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심 시오"라는 공자 -자사의 입론은 이러한 현대 인지과학의 선구적 학설일 뿐 아니라 모든 중용적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격려를 발하고 있다.
[과연 이호학역행의 도에 능하게만 되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반드시 현명해지며, 비록 유약한 자라도 반드시 강건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금기지지일야"와 "금기성공일야"의 논리로써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자사에 배어있는 보편주의적 인간관이 서려 있다. 어리석고 유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스며있는 것이다. "필명", "필강"은 지, 인, 용 삼달덕의 완성이다.
"명"이라고 한 것은 "택선"의 공효이며, "강"이라고 한 것은 "고집"의 공효이다. 여대림이 이 문제에 관하여 총괄적으로 말한 것이 있다. "군자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능히 그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덕이 기질을 이기면 이러석은 자라도 현명함으로 나아가고 유약한 자라도 강건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덕이 기질을 이기지 못하면 비록 배움에 뜻을 둔다 한들 어리석음이 밝아질 수가 없고, 유약함이 강하게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 누구에게든지 선함이 있고 악이 없는 것은 성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같은 본질이다. 이리석고 현명하고 약하고 강한, 이러한 품부의 군일치 못한 것은 재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마다 달리 타고나는 것이다. '성지자'라고 하는 것은 이 같음의 본바탕으로 돌아서 그 다을므이 재능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저 아름답지 못한 재질을 가지고 그것을 변화시켜 아름답게 만드려고 한다면 그 공부를 백배로 하지 많으면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노망스럽고 지리멸렬한 배움으로 시작했다가는 또 그치기도 하면서 그 아름답지도 못한 자질을 변화시키겠다고 했다가 변화시키지 못하는 데 이르러서는 '아~타고난 자질이 아름답지 못한 것은 배운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하고 개구라를 피운다. 이것은 자보 자기에 과감한 것일 뿐이니 불인함이 심하도가 할 것이다."
이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대순과 문왕, 무왕, 주공의 도통을 이었고, 또 이 다양한 성인들이 전하는 바의 내용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또 공자의 도가 이들 선왕과 병렬해 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비의 세계와 은의 세계, 기르고 작은 사소한 세계와 거대한 우주적 스케일의 세계를 포섭적으로 융합시키면서 테제를 완성시킨 것이다. 성을 말한 것이 비로소 상세하게 드러났으니 소위 성이라는 것이야말로 실로 중용 전체의 추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릭 내가 생각건대 공자기어 또한 이 장의 니용을 싣고 있으며, 그 글이 중용 테스트보다 더 상세하다. 가어 테스트에는 "급기 성공 일야"이후에 "애공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아름답고 지극하십니다! 과인이 실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이루어내기에는 원래 부족한 인간일 듯싶습니다."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다시 "자왈"로 시작된 답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글자가 남아 있다. 대저 자사께서 그 번거로운 대화 부분을 삭제하면서 중용에다 편입시킬 때에 충분히 삭제하지 못하여 그 두 글자가 남은 듯하다. 그러니 그 "자왈"은 연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박학지" 이하의 글들은 가어 에는 없다. 추측컨대, 가어에 궐문이 있든가, 혹 그렇지 아니하다면, 자사께서 그 뜻을 보충하신 것이 아닐까 한다.
주희는 가어를 위서로 간주하고 있지 아니하다.